뉘르부르크링 주행, 결전의 날 마님못참겠슈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고 말았어. 

결전의 날이 밝긴 했는데, 밤새 비가 왔고 내리고 있네. 

여기서 비가 더 오면 무리 안 하고 하루 더 있을 생각이지. 

어차피 누가 부르는 것도 아닌데. 

내가 잤던 별채인데, 좀 웃겨. 

어젯밤에 들어가니 방에 문이 또 하나 있는거. 

열어보니 2인실 방이 또 있네. 

헉 뭐야, 자다가 다른 사람들 들어오는 거 아냐라는 생각도. 

정말 웃긴 건 혹시나 해서 내 방(1호) 키로 2호실을 열어보니 열려. 

열어 보니 방에 짐이 있네. 

원가 절감 위한 키 공유냐. 

카운터에다 물어보니 싱글 룸이 없어서 싱글 룸 가격에 3인실을 준거라는군. 

29일까지 3일 동안 1,582km를 운전했네. 

그린 헬 개방은 2시 반이지만 일치감치 나왔어. 

렌트카도 알아보고 쇼핑도 해야 하지 않겠어.

일단 본채로 와서 아침을 먹고. 

여기 아침은 독일답지 않게 안 짜고 맛있어. 

근데 작년과 메뉴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아. 

완전 Ctrl+C에 이은 Ctrl+V야. 

그래도 안 짠 것만 해도 감사한 수준. 

맘에 드는 음식 만나면 최대한 먹어주는 게 예의. 

잤던 별채 바로 앞에 있는 링 전용 렌트카 업체 렌트4링. 

일단 가격이나 알아보자고 하니 메뉴판을 주더군. 

볼 거 뭐 있어. 무조건 ‘젤 싼 거’ 

이 업체의 차종은
스즈키 스위프트 스포트, 시트로엥 DS3, 오펠 코르사 OPC 3가지. 

메뉴판을 보니 스위프트 스테이지 1이 99유로로 가장 싸더군. 

하지만 여기에는 1시간에 2랩 만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네. 

사장 왈, 보통 4랩짜리 169유로를 선택한다. 

169유로에는 4랩 티켓(89유로)이 포함돼 있고 반납할 때 

기름을 다시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통밥 굴려보니 이게 더 낫겠더라고. 

사양은 125마력 1.6리터 자연흡기 엔진에 스포츠 브레이크와 시트, 

리어 롤케이지, 세미 슬릭 타이어. 

어차피 익숙하지 않아서 출력이 낮아도 상관은 없으니. 

이따가 다시 온다 하고 일단 바이. 

그린 헬에 왔지만 역시나 문은 닫혀 있고. 

오전에는 무슨 동호회들 주행하는 거 같드라구. 

남친 지나가니 손 흔들어주는 애인. 엄마 같기도 하고. 

작년보다 가격이 조금 올랐지. 

이 사진 보면 눈물 난다. 

남는 오전 시간에 작년에 죽쳤던 카루셀 가던 길에서 

정지 컷 하나 찍어 보겠다고 잠시 세웠지.
근데 바닥에 두 다리가 착지하는 순간 

정확히 1바퀴 굴렀어. 

전문 용어로 싱글 악셀이라고 하지. 

여기가 차들이 많이 다녀서 바닥에 기름이 많은데 비가 와서 빙판처럼 미끄러웠다는. 

다행히 렌즈 옆에만 찌그러지고 카메라는 무사. 

대신 바지 3개 중 하나가 사망. 

엊그제 세탁소에 맡긴 거 찾으러 갔는데 세탁 안 했드라구. 

엉덩이 부분이 찢어져서 입기가 힘들데. 

결국 버려야 한다는 말. 이것도 모르고 계속 입고 다녔는데. 

아 30만원이 넘는 휴고 보스 청바지 사망. 

보유한 바지 3개 중 하나가 사망하다니. 

팔꿈치 아프고 X팔려서 사진 안 찍고 쇼핑하러 감.

작년에 이 커다란 글자를 봤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저 글자가 실제보다 더 크게 다가와. 

여긴 정문. 가운데 1층이 웰컴 센터. 

2층 매장에 신상이 많이 들어왔어. 

여기서 200유로나 질렀네.

여전히 영상은 틀어 놓더군. 

이것도 보고 있으면 은근 재미있어.

사람이 없다가 11시 정도 되니까 몰려들더라구. 

관광버스 3대가 왔는데, 전부 할아버지 할머니. 

독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일요일 오전에 뉘르부르크링 관광 오나봐. 

정말 하드코어한 민족이다.

‘Grune Holle’, Green Hell이라는 뜻이지. 

일요일이라서 야외 주차장에는 돈 안 받드라구.

여기서 그린 헬 가다보면 오른쪽에 이런 거리가 있어. 

고틀리프 다임러 가와 루돌프 디젤 가에는 이런 업체들이 상주해 있지. 

여긴 양산차 메이커는 물론 

오린스 같은 댐퍼, 튜너, 타이어 회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거.

재규어는 비교적 최근에 입주. 

볼보 전문 튜너인 하이코.

GM도 여기에 테스트 센터를 차리면서 그린 헬 랩 타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

애스턴마틴 매장의 시그닛. 

시그닛은 실제로 보니 애스턴마틴 장난감 같더라. 

일요일 오전이라 개미 한 마리 없음. 

개방 시간 2시 30분에 맞춰 2시 정도에 다시 렌트4링으로 왔어. 

사무실 안에 CCTV가 있더만. 

입구랑 트랙 일부,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주유소를 비쳐주고 

트랙 노면 상태와 기온까지 표시. 전문 업체답네. 


스위프트로 하겠다 그러니 미안한데 예약이 다 찼데. 

코르사 OPC 뿐이다 이러네. 

아 이 넘의 안 예약병. 

예약하는 걸 깜박해서 이런 불상사가. 


코르사 OPC는 4랩 티켓과 재급유 안 해도 되는 조건으로 369유로@@ 

미친다 예산 초과. 

돈도 돈이지만 굳이 빠른 차가 필요가 없는데. 

코르사 OPC면 여기서 가장 비싼 차종이고 스테이지 2 다음으로 비쌈. 

근데 좀 더 비싸도 하긴 했을거야. 

여기 타러 온 게 주목적이니. 

그리고 타보기 힘든 차라서 땡기기도 했음. 

누가 코르사 OPC를 타 봤을거야. 

이 넘의 안 타본 차 병. 


한 5분 고민하다 한다고 하니 계약서를 내밀고 주의 사항을 말해주더군. 

보험에 관한 건 대충 알고 있었는데 이런 게 있을 줄이야. 

계약서에는 엔진 회전수 제한 조건이 있어. 

자연흡기 엔진인 스위프트는 7,500 rpm, 

터보 엔진의 코르사 OPC와 DS3는 7천 rpm. 

만약 이 제한 회전수를 넘게 되면 

200 rpm이 넘을 때 1만 5천 유로, 
400 rpm이 넘으면 2만 5천 유로, 
600 rpm이 넘으면 3만 5천 유로, 
1천 rpm이 넘으면 4만 5천 유로를 물어야 한다는. 

물어보니 단 한 번만 넘어도 안 된다고 하네. 

생각해 보니 어차피 연료 제한이 있기 때문에 한 기어로 밀어 붙여서는 
제한 회전수를 넘지 않아. 

결국 변속 실수를 하지 않아야 된다는 얘기. 

예를 들어 4단에서 3단 넣으려다 2단 들어가고 머 이런 상황. 

줄리에타도 처음에 자주 실수 했던 게 5→6단 하려다 4단 들어간건데. 

자비로 왔는데 자비 좀 베풀어라ㅠ 

사장 양심 있다. 

돈 내기 전에 말해주고. 

거기다 차가 너무 심하게 더러워지면 세차비도 내야 한데. 

그럼에도 이미 손은 카드를 꺼내고 있고.

이게 내가 탈 오펠 코르사 OPC. 

가장 비싼 차고 잘 안 나가는 차라 그런지 

구석에 짱 박혀 있다 나오더라구. 

타이어는 토요 타이어의 R888 세미 슬릭. 

맘에 드네. 

보통 세미 슬릭은 가장 전투력을 높일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안전 장비의 의미가 더 강하지.

보다시피 실내는 순정. 

근데 2열과 트렁크는 모두 들어냈어. 거기다 하프 롤케이지까지. 

내장재를 들어내서 그런지 가만히 서 있으면 누구처럼 배기가스 들어와.  

운전대도 D-컷 스타일. 지름이 약간 큰 감은 있어.

일체형 순정 시트가 엄청 좋더군. 

아깝다 똑딱이 달아매기 좋은 시트인데. 

동영상 찍기 위해 청테이프도 가져 왔는데. 

인 캠까진 사긴 후달리고 똑딱이 달아매려고 했거든.

당연한 거겠지만 모니터의 폰트나 색상, 센터페시아 디자인이 
한국지엠 차와 비슷해.

회전수 제한 페널티를 생각하니 타코미터만 보인다 정말.

나처럼 예약 안 한 사람이 있나. DS3도 출격 준비.

이 많은 스위프트들이 전부 출동했어. 장사 잘 된다 정말. 

참나 여기 사무실에도 자판기 커피를 2유로 받네. 

플라스틱 커버 열고 컵 붙잡고 있는 걸 사장이 보드만 

불안한 눈빛으로 웃더라구. 

내가 성격이 급한 게 아냐, 한국 사람 다 이래. 


2시 반이 됐는데 왜 안 하냐 그러니 서킷에 사고가 있어서 

3시 반 정도에 연다고 하네.

출격을 앞두고 사장의 브리핑 시간. 

주로 안전에 관한 얘기지 뭐. 

일단 아주 작은 사고라도 나면 그냥 가지 말라고 재차 주의를 주더군. 

한 마디로 뺑소니 치지 말라는 말. 

사고가 나면 자기가 준 핫라인으로 일단 전화를 하래.

어제 내가 느꼈던 주행 중 주의 사항도 열심히 얘기하더라고. 

절대 무리하지마라, 나보다 빠른 차는 추월하게 도와줘라 등등 

그리고 코르사 OPC랑 DS3는 사실상 2단 기어를 쓸 필요가 없다고. 

타임 어택하는 거 아니니 무리해서 하지 말라는 얘기. 

첫 랩은 분위기 파악과 타이어 예열 하는 차원에서 살살 달리라고 덧붙임. 

회전수 조심하라는 말도 또 함. 

그린 헬은 둘째 치고 사고 없이 무사히만 돌아오자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난 좀 늦게 출발했는데, 사장과 직원이 ‘해브 펀’ 하래. 

해브 펀 같은 소리하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부턴 사진이 없어. 

여기 주차장에 세워둔 줄리에타에 모든 짐 놓고 감. 

딱 핸드폰만 갖고 탔다는. 

그린 헬까지 살살 몰고 가는데 어제보다 더 긴장되데. 

일단 운전 자체는 어렵지 않은 차야. 

어차피 다 순정에 롤케이지랑 타이어, 브레이크만 바꾼 차니까. 

줄리에타와 비교하면 코르사 OPC는 수퍼카. 

코스도 잘 모르고 코너도 어려워 192마력도 부담되긴 하는데 

그래도 힘 센 게 좋긴 하드라. 

어제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추월 당하진 않으니까. 

코너에서 치고 나가는 힘이나 언덕 올라갈 때는 비교할 수도 없고. 

오늘은 GP 서킷으로 안 빠지고 바로 우회전해서 그린 헬로 진입. 

진입해서 얼마 되지 않아 관광버스 2대 추월. 

벌써 2대나 추월하는 쾌거를 달성! 


그 넘의 회전수 때문에 적당히 5,500 rpm 정도에서 변속. 

어제 한 번 달려보긴 했지만 생소한 건 똑같아. 

힘 센 차지만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는 시간이 극히 짧았어. 

그도 그럴 게 좀만 가면 속을 알 수 없는 코너가 나오고 

추월도 시켜줘야 하니. 

그래, 첫 랩은 살살. 

안타까운 게, 속도가 비슷한 차가 있으면 대충 따라 달리겠는데 

나보다 빠른 차가 대부분이니. 
그랬는데 중간쯤 되니 마음이 달라져. 

코르사 OPC가 힘이 있다 보니 어제보단 차들이 만만해 보인다고 할까. 

그러다 뒤에서 한 대의 차가 천천히 따라 붙어서 

추월을 하는데 구형 벡트라 3.2 V6. 

잘됐다 싶어서 따라가는데 래디얼 타이어 낀 구닥다리 차가 

왜 이렇게 빨라. 

좌우로 휘청휘청 대면서도 정말 잘 달리더라. 


빠른 차를 타니 어제의 코너와 오르막이 더 무섭고 빠르게 다가오네. 

어제도 말했지만 오르막이 높고, 넘어서 어떤 코너 또는 뭐가 있을지 모르니 
정점에 오르기 전에 오른발에서 힘을 빼게 돼. 

주로 사용하는 기어는 3단이고 사장 말처럼 2단을 쓸 필요가 별로 없어. 

2단 쓸 일이 있을 정도로 격한 코너가 있긴 한데 굳이 필요를 못 느끼겠더라구. 

어제 골프 추월하다 버벅거린 연속 S 코너에서는 또 다시 헤매기도 하고. 
1랩을 돌고 나면 무조건 들어와야 해. 

연속으로 돌 수가 없어. 

나도 연속으로 돌 마음은 안 생겨서 구름 보면서 과자 하나 먹고. 

내가 차 세운 바로 앞에 같은 집 스위프트가 있었는데, 

젊은 애들 두 명 중 하나는 얼굴이 하얗게 뜬 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 


2랩에서는 긴장이 좀 풀렸어. 6천 rpm도 넘기고. 

중간엔 아우디 R8 추월도 하고. 

나중에 주차장 들어와서 보니 손자가 할아버지 택시 드라이빙. 

할아버지 모시고 너무 빨리 달리는 거 아냐. 

여기의 기본적인 주행 요령은 책자에 나온 것처럼 

일반적인 독일 도로의 상식에 준해. 

근데 여기도 그런 걸 안 지키는 사람이 있긴 하드라고. 

달리다가 벤츠 E 클래스가 붙어서 비켜줬는데 나보단 빠르게 잘 달림. 

안경 낀 백인 2명이었는데 뒤에서 훨씬 빠른 파란색 911이 붙은 것도 모르고 

라인 타고 주행 하드라고. 

911이 하이빔을 여러 번 켰는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킴. 

결국 911이 우측으로 추월했어. 

내가 로마 출장 와서 우측 추월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여기서 보다니. 

(뉘르부르크링의 교통정체 현상)

달리다 보니 렌트4링이 왜 가장 싼 차도 세미 슬릭 타이어를 끼웠는지 이해가 됨. 

세미 슬릭은 정말 안전 장비야. 

워낙 접지력이 좋아서 대충 밀고 들어가도 버텨. 

조향이나 제동이 늦어도 접지력으로 버티고 돌아가는거지. 

그러니까 조향만 제대로 해주면 어지간해서는 탈선하지 않지. 


이 날 유일의 동양인에 잘 보이지도 않는 코르사 OPC 타고 있으니 
나름 주목을 받음. 

한 바퀴 돌고 구름 보고 있으면 한두 명씩 와서 말 걸어. 

영국에서 온 애는 네 차냐, 아니다 렌트카다, 얼마냐, 369유로다 그러니 놀라드라고. 

근데 4랩 티켓 포함에 주유 필요 없다 그러니 납득하는 눈치. 

그거보고 나도 납득하고. 

3랩에서는 들어가자마자 노란 깃발 떴다는.

마쓰다 MX-5가 뒤돌아 서 있더라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어제의 996 GT3 MR만큼은 아니지만 겁나 빠른 차를 봤어. 

푸조 RCZ. 

래디얼 타이어 끼고 저래 빠르나. 

알고 보니 소속이 팀 푸조 RCZ 노키아. 

이날 팀 푸조 RCZ 노키아 소속의 차가 5대 정도 왔거든. 

직선을 가장한 연속 굽은 길에서는 거의 브레이크를 밟지 않더군. 

좀 보려고 해도 하도 빨리 가니. 

다시 돌아와서 구름 보는데 폴란드에서 온 커플이 네 차냐구 또 물어보네. 

렌트4링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있잖아. 좀 봐라. 

얼마냐 그래서 369유로라고 하니 놀랬다가 설명해 주니 납득. 

그거보고 나도 납득할 만한 가격이라고 안심. 


4랩은 마지막이니 달려보기로 했어. 아 몰라. 

몇몇 코너는 인제 좀 생각나기도 하고. 

파일런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세아트 레온을 추월했는데, 

그 모습을 본 뒤에 있던 포르쉐는 차선이 넓은데도 불구하고 추월하지 않더라고. 

내가 추월을 마친 후 우측으로 붙으니 바로 추월. 

시작하는 오르막에서 레드라인까지 힘껏 밟았는데 

5천 rpm이 넘으면 풀 부스트가 차면서 앞이 좀 흔들려. 

약하게 토크스티어가 발생하긴 하는데 특별히 불안하진 않아. 

약간의 꽝 터보 같은 느낌인데도 불구하고 저속 토크는 나쁘지 않고, 

이 1.6 터보가 괜찮은 엔진 같아. 

거기다 롤 케이지를 쳐서 그런지 비틀리는 느낌이 없어. 

세미 슬릭 끼고 이런 코너 돌 때 섀시가 강하지 않으면 

뭔가 흐물거리는 느낌이 나는데 그런 게 거의 없더라구. 


3랩부터는 추월당하기보다는 추월하는 횟수가 더 많아졌어
4km 지점의 코너를 돌아서니 같은 집 스위프트 4대가 나란히 가더군. 

속으로 ‘아오 이런 양민들’ 하면서 가뿐히 학살해주고. 

니네들도 명색이 세미 슬릭인데 좀 달려봐라. 

그렇게 거만 떨다가 뒤에서 하얀색 RCZ가 또 날아오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지. 

그래, 누구처럼 선행을 시키고 스피드를 흡수하자. 

그렇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추월 시켜주고 따라갔지. 

지금부턴 내 자랑은.... 개뿔. 

코너 2개 돌았는데 눈 밖에서 사라졌어. 

테일램프도 안 보여. 

팀 푸조 RCZ 노키아면 뉘르부르크링 24시 레이스 출전한 애들인데 

이런 애들은 입장 시키지 좀 말지. 

근데 보디 움직이는 거보면 레이싱카는 아니었음. 

차체에도 붙은 스티커도 팀 푸조 RCZ 노키아 한 장. 

절반을 약간 지났을 때 드디어 이상적인 상대를 만났어. 

저 앞에 차가 아주 천천히 가까워지는거야. 

어느 정도 붙어서 보니 촌스런 빨간색의 오래된 닛산 240SX. 

난 추월할 생각은 없었고 코스도 모르는데 속도 비슷한 차나 따라가자는 심정. 

얼핏 봐도 순정은 절대 아니고 여기저기 튜닝된 차. 

내가 그렇게 따라가니 240SX가 어느 순간 움찔 하더라구. 

그리고 양 머플러에서 불이 20cm는 나옴. 

와우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 

연료를 얼마나 때려 붓길래 불이 저만큼이나 나오나. 

근데 차 나가는 건 큰 차이 없던데 풋. 

하여튼 둘이 이런 식으로 한참을 갔어. 

직선 가속은 240SX가 조금 빠르고 코너는 내가 더 빠르고. 

조심해 타야지 하는 초심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투쟁심은 늘어가고. 

던롭 포스트 지나면 내리막 90도 커브가 있는데 거기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있어. 

사람이 많이 있으니 영웅 심리가 생긴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랩이고 호적수가 생기니 오버하다 차 뒤집힐 뻔. 

역시 세미 슬릭이 깡패야. 

몰입해서 달리다 보니 3단으로 회전수 제한에도 걸리고. 

아차 싶었는데 역시나 알아서 제한이 걸려주더만. 

변속 실수만 조심하면 돼. 

여기서는 속도를 많이 내서 5단으로 회전수를 5,500 rpm까지 올렸어. 

그렇게 달리다 결국 2번째 카루셀에서 안쪽으로 추월했어. 

카루셀에서는 접지력이 떨어지니까 우측으로 비켜주더라구. 

속도가 비슷한 상황에서는 세미 슬릭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지. 

아 이 뿌듯함. 

369유로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나. 머리에 총 맞은거지. 

생각해봐 단 4랩이면 그래봐야 80km. 

줄리에타 9일 빌리는데 422유로야. 

4랩 시작할 때 시계를 봤는데 20km 지점까지 

대략 11분 정도 나온 거 같아. 

가장 먼저 돌아오니 사장이 어라 무사히 돌아왔네라는 표정. 

돈 좀만 더 내면 추가 2랩 더 탈 수 있다고 꼬셨는데, 

체력의 반이 방전된 상태라서 패스. 내가 호구냐. 

메팅엔에서 여기 오는 것보다 여기서 4랩 타는 게 더 힘드네. 

차를 살필 때 약간 뜨끔했어. 

첫 랩 돌 때 헤매는 바람에 한 쪽 바퀴가 그래블에 빠진 적이 있는데. 

다 끝나고 사장이 부르데. 

혹시 회전수 넘었나 해서 또 뜨끔. 

알고 보니 자기 손님들은 여기다 사인하는 거래.

그래서 해줬지. 유일한 한글.

3시 반이 넘어서 시작했고 돌아오니 5시 반이 됐더라구.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다시 길을 떠나야지. 

여기서 니스를 찍으니 800km가 넘었던가. 

하여튼 오늘 중에는 못 가는 거리라서 갈 만큼 가다가 자기로 했어. 


니스를 찍으니까 룩셈부르크를 살짝 스쳐서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를 지나가는 코스. 

몰스하임을 지나는데 부가티 호텔도 봄. 

부가티가 몰스하임에서 시작했거든.

근데 프랑스는 국도 달리는 시간이 많아서 시간이 너무 걸리는거야. 

그래서 프랑스 변두리에 있는 휴게소에서 이상한 음식 먹으면서 고민하다 

스위스에서 자기로 했어. 

시간도 늦었고 바지에 묻은 경유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더는 운전을 못하겠드라구. 

결국 10시 넘어 베른에 도착해 잤지. 

스위스 국경에서 로드 택스 40유로 내래. 

이게 일 년짜리인데 떼어서 갖고 온다는 거 깜박했네. 

운전 별로 안 한 거 같은데 이날도 514km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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